기업법무 칼럼
계약서 법률검토 자문, 변호사는 계약서에서 무엇을 보는가
어떤 계약서가 문제를 일으키는지 유형별로 나눠 보겠습니다
기업 자문을 하다 보면 계약서를 두 시점에 받게 됩니다. 하나는 도장을 찍기 전날 밤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사고가 난 뒤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가 훨씬 많습니다. 대금을 못 받았거나, 상대가 갑자기 계약을 끊었거나, 결과물의 권리를 두고 다투게 된 다음에야 계약서를 다시 펼쳐 보시는 것입니다.
그때 대부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 조항이 이런 뜻인 줄 몰랐습니다." 계약서는 사이가 좋을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사이가 나빠진 순간부터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계약서를 미래의 분쟁을 미리 적어 두는 문서라고 설명드립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어떤 계약서가 문제를 일으키는지, 변호사가 계약서를 받으면 어떤 순서로 무엇을 보는지를 최대한 쉬운 말로 적어 보겠습니다.
어떤 계약서가 문제를 일으키는지 유형별로 나눠 보겠습니다
유형 1. 상대가 준 양식을 그대로 쓴 경우
가장 흔합니다. 규모가 큰 거래처가 자기네 표준 양식을 보내오면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서명하시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그런 양식은 당연히 보낸 쪽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검수 합격 여부를 상대가 단독으로 정하게 되어 있거나, 언제든 아무 이유 없이 해지할 수 있게 되어 있거나, 손해배상 한도가 한쪽에만 걸려 있는 식입니다.
여러 상대에게 같은 양식을 쓰고 있다면
특정 거래를 위해 개별적으로 협상한 계약이 아니라 여러 상대에게 똑같이 쓰는 양식이라면 약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신의성실에 반해 공정을 잃은 조항을 무효로 하고, 사업자의 책임을 부당하게 면제하는 조항, 고객에게 과중한 지연손해금을 물리는 조항, 해제나 해지 권한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조항을 각각 무효로 정하고 있습니다. 즉 서명했다고 해서 전부 그대로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형 2. 예전 계약서를 금액만 바꿔 재활용한 경우
한 번 만들어 둔 파일을 계속 쓰시는 경우입니다. 문제는 거래 내용이 바뀌었는데 조항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물품 납품 계약서를 그대로 개발 용역에 쓰면 결과물의 권리 조항이 아예 없고, 일회성 거래용 계약서를 장기 거래에 쓰면 대금 인상이나 중도 해지에 관한 내용이 비어 있습니다. 빈 곳은 법이 정한 기본값으로 채워지는데, 그 기본값이 우리 쪽에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유형 3. 위약금 조항이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
"위반 시 계약금액의 30%를 지급한다"고 적어 두고 안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민법은 위약금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합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이면 법원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판단할 때 직권으로 깎을 수 있습니다.
위약벌로 하려면 그렇게 적어야 합니다
깎이지 않게 하려면 손해배상과 별도로 제재금 성격이라는 점이 계약서에 드러나야 합니다. 다만 위약벌이라고 적어 두어도 지나치게 무거우면 공서양속에 반해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위약금 조항을 쓸 때 성격을 명시하고, 실제 손해 배상 청구와의 관계를 함께 정리해 둡니다.
유형 4. 하도급이나 위탁 거래인 경우
이 영역은 최근 변화가 빠릅니다. 2025년 10월 2일부터는 서면에 적지 않은 비용이나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수급사업자에게 떠넘기는 약정이 사법상 무효가 됩니다. 2025년 12월 17일부터는 수급사업자가 공정거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위반행위 금지를 청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납품대금 연동제도 챙기셔야 합니다. 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재료가 있으면 연동 관련 사항을 약정서에 적어야 하고, 회피 행위에는 5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따릅니다. 거래기간 90일 이하이거나 대금 1억원 이하인 경우처럼 예외도 있지만, 합의로 배제하려면 서면에 적어야 합니다.
유형 5. 계약서가 아예 없는 경우
견적서와 메신저 대화만으로 일이 진행된 경우입니다. 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어디까지 하기로 했는지가 남아 있지 않아서, 분쟁이 생기면 양쪽 말이 정면으로 갈립니다. 이 경우 저희는 남아 있는 기록으로 계약 내용을 복원하는 작업부터 합니다.
유형별 비교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지금 쓰고 계신 계약서를 놓고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체크되지 않는 항목이 많을수록 위험합니다.
☐ 계약의 목적물과 범위가 문장으로 특정되어 있다
☐ 대금 지급 시기와 조건이 날짜로 정해져 있다
☐ 검수 기준과 검수 기간이 정해져 있고, 기간이 지나면 합격으로 본다는 내용이 있다
☐ 대금 지급이 늦어질 때의 이자율이 적혀 있다
☐ 계약을 끝낼 수 있는 사유와 통보 기간이 양쪽 모두에 있다
☐ 중도 해지 시 이미 진행한 부분의 대금 처리 방법이 있다
☐ 손해배상의 상한이 정해져 있다
☐ 위약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별도의 제재금인지 명시되어 있다
☐ 결과물의 권리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적혀 있다
☐ 비밀유지 의무의 기간과 범위가 정해져 있다
☐ 분쟁이 생겼을 때 어느 법원에서 다툴지 정해져 있다
☐ 계약서에 없는 내용을 메일이나 메신저로 바꿀 수 있는지 정해져 있다
변호사가 계약서를 받으면 실제로 하는 일
"계약서 좀 봐 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으면 저희는 정해진 순서로 읽습니다. 어떤 순서인지 그대로 적어 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계약이 무슨 계약인지부터 정합니다
제목이 무엇이든 실제 내용이 도급인지, 위임인지, 매매인지, 임대차인지, 라이선스인지를 먼저 봅니다. 여기가 정해져야 계약서에 빠진 부분을 어떤 법이 채우는지가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이면 결과에 책임을 지지만, 사무 처리를 맡기는 위임이면 성실히 처리하면 되는 식으로 기본값이 다릅니다. 계약서 제목만 용역이라고 붙여 놓고 실제로는 근로계약에 가까운 경우도 자주 봅니다.
둘째, 돈이 언제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봅니다
계약서 법률검토에서 가장 먼저 손보는 부분입니다. 대금을 언제 청구할 수 있는지, 무엇이 있어야 청구가 되는지, 검수는 누가 언제까지 하는지를 확인합니다. 검수 기간에 제한이 없으면 상대가 검수를 미루는 방식으로 대금 지급을 무기한 늦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합격한 것으로 본다는 문장을 반드시 넣습니다. 지연이자율과 상계 조항도 함께 봅니다.
셋째,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는지 봅니다
계약은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떤 사유가 있을 때 끝낼 수 있는지, 몇 일 전에 알려야 하는지, 끝냈을 때 이미 한 일에 대한 대금은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합니다. 상대만 언제든 해지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계약서가 정말 많습니다. 이 조항 하나만 대칭으로 바꿔도 협상력이 달라집니다.
넷째, 사고가 났을 때 얼마까지 무는지를 봅니다
책임 한도가 없는 계약서는 위험합니다. 계약 금액이 3천만원인데 손해배상에 상한이 없으면 수억원을 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총 책임 한도를 계약 금액 기준으로 정하고, 영업손실이나 기대이익 같은 간접적인 손해는 배상 범위에서 빼는 조항을 넣습니다. 다만 고의나 중대한 과실까지 면책하는 조항은 효력이 부정될 수 있으므로 그렇게 쓰지 않습니다.
다섯째, 결과물이 누구 것인지를 봅니다
개발, 디자인, 콘텐츠 계약에서 가장 많이 터지는 부분입니다. 대금을 다 지급했다고 해서 권리가 자동으로 넘어오지 않습니다. 저작권은 만든 사람에게 원시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넘겨받으려면 계약서에 그렇게 적어야 합니다. 넘길지 이용 허락만 할지, 넘긴다면 2차적 저작물 작성권까지 포함할지, 개발사가 기존에 갖고 있던 부분은 어떻게 할지를 나눠서 정리합니다.
여섯째, 비밀유지와 경업금지를 봅니다
비밀유지 조항은 대부분 들어 있는데, 기간이 무기한이거나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서 오히려 지킬 수 없는 조항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업금지는 범위와 기간이 과도하면 효력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정말 필요한 범위로 좁혀 두는 편이 실제로는 더 강합니다.
일곱째, 싸움이 났을 때 어디서 다툴지를 봅니다
관할 법원이 상대 본사 소재지로만 되어 있으면, 3천만원 받으려고 멀리까지 소송을 다녀야 합니다. 이것만으로 청구를 포기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국내 거래는 관할 조항을, 해외 거래는 준거법과 중재 조항을 함께 봅니다.
여덟째, 법에 걸리는 조항이 없는지를 봅니다
계약서 법률검토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당사자가 합의했더라도 강행법규에 어긋나면 그 조항은 효력이 없습니다. 하도급법의 부당특약, 약관규제법의 불공정 조항, 근로 관계에서의 기준 미달 약정이 대표적입니다. 무효인 조항을 믿고 있다가 분쟁에서 그대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어서, 이 점검은 빠뜨리지 않습니다.
계약 유형별 조력 사례
아래 표는 실제 자문 사례를 각색해 정리한 것이며,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계약서를 보내 주실 때 파일만 보내지 마시고, 이 거래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한 줄만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돈을 못 받을까 걱정이신지, 상대가 갑자기 끊을까 걱정이신지, 결과물을 뺏길까 걱정이신지에 따라 손봐야 할 조항이 달라집니다. 조항을 다 고칠 수는 없으니, 협상에서 밀어붙일 곳과 양보할 곳을 나눠 두는 것이 실제 검토의 핵심입니다.
계약서를 미리 보는 비용은 늘 아깝게 느껴집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소송에서 만나는 사건의 상당수는 계약서 한 문장만 달랐어도 시작되지 않았을 사건입니다.
저희는 사건을 많이 맡지 않습니다. 계약서 법률검토처럼 문장 하나가 몇 년 뒤의 결과를 바꾸는 일일수록, 한 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결과를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법률사무소 정로 / 서울 서초동 | 기업자문, 계약 검토, 민사소송, 형사사건
FAQ
Q. 상대가 준 계약서는 못 고친다고 하는데 방법이 있나요?
A. 전부를 고칠 수는 없어도 몇 개는 대부분 됩니다. 실무에서는 요구 사항을 우선순위로 정리해 상위 두세 개만 요청하는 방식이 잘 통합니다. 그리고 고치지 못한 조항이 있다면, 그 조항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리 알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대응이 달라집니다.
Q. 이미 서명했는데 불리한 조항을 무효로 만들 수 있나요?
A.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상대에게 동일하게 사용하는 양식이라면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어 불공정한 조항이 무효가 될 수 있고, 하도급 거래에서는 부당특약을 무효로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서명했다고 해서 모든 조항이 그대로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Q. 위약금을 크게 적어 두면 확실히 받을 수 있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위약금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고, 부당하게 과다하면 법원이 직권으로 깎을 수 있습니다. 금액을 키우는 것보다 성격을 명확히 하고 실제 손해와의 관계를 정리해 두는 편이 실질적입니다.
Q. 계약서 없이 메신저로만 일했는데 대금을 받을 수 있나요?
A. 받을 수 있습니다. 계약은 서면이 없어도 성립합니다. 다만 무엇을 어디까지 하기로 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므로, 견적서와 대화 기록, 작업 결과물, 상대의 확인 표현이 남아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지금이라도 정산 내용을 서면으로 확인받아 두시면 훨씬 유리해집니다.
Q. 표준계약서를 쓰면 따로 검토하지 않아도 되나요?
A. 표준계약서는 좋은 출발점이지만 우리 거래에 맞춰 조정하지 않으면 빈 곳이 생깁니다. 특히 결과물의 권리, 검수 방법, 책임 한도는 거래마다 달라서 그대로 두면 분쟁의 원인이 됩니다.
Q. 하도급 계약서도 따로 봐야 하나요?
A. 반드시 봐야 합니다. 2025년부터 부당특약이 사법상 무효가 되었고, 수급사업자가 법원에 직접 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도 시행되었습니다. 원사업자 쪽에서는 기존 계약서에 무효가 될 조항이 남아 있는지, 수급사업자 쪽에서는 부당하게 떠안은 비용이 없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Q. 검토를 맡기면 어떤 형태로 결과를 받게 되나요?
A. 저희는 수정본 파일과 함께, 어떤 조항을 왜 고쳤는지와 협상에서 어디까지 양보해도 되는지를 정리한 의견을 함께 드립니다. 계약서만 받으시면 상대가 반박했을 때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근거를 함께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